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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陰者는 百代之過客이라. 세월이란 것은 영원한 과객이라. 김선호는 영원한 과객의 흔적을 기록한다.

어머니 칠순 기념 (2014-10-12)

김선호 2014.10.13 20:52 조회 수 : 451 추천:39



형의 '어머니 칠순에 부쳐' 전문

어린 시절,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는 늘 집에 안 계셨습니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우리 엄마는 당시 흔치 않았던 ‘워킹맘’이었으니까요. ‘엄마가 일을 한다’는 사실에 어떤 친구들은 부러움을 드러내기도 했고 어떤 아이들은 그럼 밥은 누가 해주냐며 걱정의 시선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다른 엄마들은 늘 집에 있다는 걸 처음 알아챘을 때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나이였습니다. 하지만 어렴풋하게 기억나는 그때의 감정은 일종의 자랑스러움과 뿌듯함이었습니다. 우리 엄마는 남들과 달리 엄마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낯선 도구와 재료들, 색색의 천에 둘러싸인 넓지 않은 그곳에 가면 나는 늘 환영 받는 존재라는 사실이 좋았습니다. 인동의 도원양장이라는 그 세계 말입니다.

아름다운 산과 계곡, 맑은 하늘이 펼쳐진 곳에서 멋진 자연을 접하며 자라난 작고 아리따운 소녀는 도시로 넘어와 옷을 만드는 기술을 익히고 온 젊음을 거기에 바쳤습니다. 물론 그건 시부모님을 모시고 세 아이를 부족하지 않게 키우기 위한 생활인으로서의 역할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저와 동생들이 자라나던 시절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당시는 물론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 이상적인 조화와 균형으로 가득한 행복한 가정이었습니다. 바르고 굳건한 아버지를 중심으로 따스한 정이 많았던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누구보다도 ‘엄마’라는 단어와 그 말이 주는 아련함과 포근함에 잘 어울리는 우리 엄마가 계셨기에 가능했습니다.

우리 엄마가 걸어온 인생은, 사랑하는 자식들과 가족을 위해 그야말로 모든 걸 내려 놓은 채 참고 희생하는 삶이었습니다. 물론 헤아릴 수 없는 세상의 엄마들이 그러하다는 걸 모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엄마는 누구보다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낮추며 묵묵히 엄마와 아내와 며느리의 역할을 충실히 해온 여인입니다. 마치 애초에 그렇게 역할이 정해져 있고 그 일을 하도록 타고났다는 듯, 어느 종교인보다 더 인내하고 노력하며 건실한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엄마의 그러한 삶이 아니었으면 지금과 같은 우리 세 남매의 모습은 있을 수 없을 겁니다. 저도 커가는 태민이와 꼼꼼히 그 뒷바라지를 하는 태민엄마를 보며 오래 전 엄마와 아버지께서 느끼셨을 마음을 이제 어렴풋이나마 알아가고 있습니다. 선호와 선경이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 엄마는 무척이나 많은 ‘끼’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건 단지 뛰어난 음식 솜씨나 손재주 같은 역량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많은 분들이 인정하듯 엄마의 노래 실력은 오래 전부터 정평이 나 있었으며, 타고난 풍부한 감성과 예술적 감각은 우리 엄마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살아 숨쉬고 있었습니다. 저나 동생들이 엄마의 노래 솜씨를 닮지 못한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적어도 저는 음악을 듣는 좋은 귀를 물려 받았으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엄마는 어린이들에게 구연동화를 들려주고 연기를 펼치고 마술을 보여주며 재능을 쏟아내고 계십니다. 노년에 즐겁게 몰두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인정을 받으며 능력을 펼쳐 보인다는 건 정말 멋진 일입니다.

세월은 말 그대로 활시위를 떠난 화살과도 같아서, 고왔던 우리 엄마가 벌써 칠순을 맞이했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머리에 흰 눈이 내리고 주름이 깊어져도 엄마에게 펼쳐지는 하루하루는 즐거움과 설렘이 더욱 많은 날들일 겁니다. 저희가 엄마에게 가지는 사랑과 존경의 마음 또한 변함 없이, 아니 날이 갈수록 깊어질 거구요. 항상 감사 드립니다. 이렇게 멋지고 아름다운 어머니와 아버지를 가졌다는 사실은 더할 수 없는 행운이요 행복입니다.

어머니, 칠순 생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항상 건강과 웃음이 함께 하길 기원합니다.

2014년 10월 12일, 경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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