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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陰者는 百代之過客이라. 세월이란 것은 영원한 과객이라. 김선호는 영원한 과객의 흔적을 기록한다.

승필이와 함께 한 지리산 산행기(2016-10-16~10-17)

김선호 2016.12.17 22:19 조회 수 : 158 추천:10



승필이와 지리산에 1박 2일로 다녀왔다. 이 녀석과는 오랫동안 등산이나 자전거 여행을 하곤 했는데 이번 지리산 등산은 지난 여름 한강 자전거 길 116Km 라이딩 후 3개월 여 만에 함께 한 활동이 되겠다. 그 사이에 우천, 개인적인 일들로 몇 차례 활동들이 무산되었던 터라 이번에 계획한 지리산 등산은 누가 뭐랄 것도 없이 필참의 일로 여겨졌다. 그래서인지 첫째날(10월 16일) 우천 예보가 떴음에도 아무도 취소라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상하리만치 이 녀석과 여행 계획을 세우면 어김없이 비소식이 뒤 따른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리산 날씨는 첫 째날만 시간별로 1~4mm, 19~20mm 정도에 밤 9시경 그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이정도 비는 감내할만하다고 무언의 합의를 한 듯 우리는 강행했다. 사실 다른 기회를 잡기도 어려워서이기도 하다. 10월 17일(월요일)이 회사 창립일로 휴무이기도 하거니와 승필이는 월휴를 낸 상태라 이건 비가 오든 눈이 오든 가야만 했다. 우선 성삼재~연하천 대피소까지를 첫 날 일정으로 잡고, 이후 일정은 힘닿는대까지 하기로 했다. 대전에서 만나 차로 이동을 했는데 지리산에 다가갈 수록 빗방울이 굵어졌다. 빗방울이 제법 굵은데도 성삼재에는 우비를 쓴 관광객들이 꽤 많았다. 채비를 하고 오전 11시 5분, 출발했다.


 
부슬비 정도라 이 정도는 고어텍스 하드쉘 정도로 커버가 되리라 믿고 진군했다. 아주 가벼운 오르막조차 젬병인 승필이와 맞추려면 먼저 치고 나간 후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급기야 이 녀석은 내가 먼저 나아가지 못하게 했다. 노고단 대피소에 11시 48분에 도착했다.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는데 사람들이 꽤 많았다. 그들도 계획된 일정에 맞추어 왔겠지만 이런 비에 조망을 기대할 수 없는 조건인데도 온다는 게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어찌 보면 사람들은 꿋꿋한 면이 있다. 노고단 대피소 취사장에는 발디딜 틈도 없었고 간신히 처마밑에 기대서 싸가지고 온 김밥을 먹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왜이리 무질서가 공존할 수 밖에 없는 것인지, 곳곳에서 대 놓고 담배를 피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옆에 사람이 있어도 아랑곳 않는다. 급기야 대피소 직원에게 얘길 했더니, 국립공원에서 담배 피면 벌금 30만원이라는 안내 방송을 한차례 할 뿐이었다.


노고단 고개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2시 28분. 예상한 대로 안개와 비로 조망은 전혀 없었다. 비가 계속 내려 카메라를 꺼낼 엄두를 안냈고 휴대폰을 간단히 기념 사진을 찍고 천왕봉쪽으로 나아갔다.
 
노고단 고개 이 후부터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피아골로 간다는 한 그룹만을 만났을 뿐이다. 2시 31분에 노루목을 지나쳤고 3시 1분에 삼도봉에 도착했다. 비는 거세지기만 할 뿐이고 예보보다 훨씬 많은 양의 비가 내렸다. 삼도봉을 지날 무렵 즈음으로 기억된다. 철통같았던 등산화에 물이 스며들기 시작하더니 금새 신발 안은 물로 가득차 찝찝함의 정도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고어텍스 등산화라고 해서 나는 무조건 방수가 되는 줄 알았는데, 이 역시 한계가 있었다. 4시간 동안 비를 맞으니 결국 리미트를 넘어 물이 들어 온다. 승필이는 시작부터 스패츠를 찼는데 나보고, “스패츠를 준비했었어야지, 인석아” 라며 “장비의 도움이 충분하다면 비 따위는 문제도 안되는군” 이라는 말을 내뱉었다. 그런데 이 말을 취소해야 하는 순간은 5분이 채 안걸린 것 같다. 거센 빗속에서, 평지의 길엔 어김없이 거대한 물웅덩이가 생기고 그 곳을 첨벙첨벙 걷고 신발의 가죽이 물을 계속해서 머금고 머금다가 한계 상황에 다다르면 결국, 고어텍스건 스패츠고 뭐고간에 물은 스며들게 되는 것이다. 4시간의 동안 버텨준 게 고마울 지경이었다. 몸은 그닥 젖지 않았는데 젖은 신이 문제였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그렇게 가는 수 밖에...              
 
화개재로 향하는 길은 왜 이리 가파르게 내려가든지, 승필이가 우리 하산길로 잘 못 들어선거 아니냐고 하도 걱정을 해서 지도를 다시 살펴보고 갔다. 내려가는 계단길이 멀기도 멀었다. 화개재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3시 31분. 한참을 내려왔으니 이제 다시 올라가야 한다. 오르막은 정말 더뎠다. 토끼봉을 오후 4시 21분에 지났고 좀 지나니 비가 많이 와서 걱정이 되었는지 연하천 대피소 직원이 전화를 했다.
명선봉 이정표에 다다랐을 때 시각이 5시 43분이었다. 급속히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연하천대피소에 도착한 시각이 5시 51분이었다. 우리 뒤로 더 이상 오는 사람은 없었다. 비가 많이 와서 등산객이 거의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와 있었다. 다만 빈 자리가 많아 넓직하게 잘 수 있었다. 대부분 여유를 두고 오신 분들인 것 같았다. 오후 1시부터 도착해 있었다는 분들도 있었으니…



늘 그렇듯 설잠을 자고 자꾸 눈이 떠져서 새벽같이 일어나 서두르고 싶었는데 승필이가 밍기적 대며 일어나지 않는다. 결국 아침을 먹고 출발한 시간이 오전 6시 35분 경이었다. 이상하게도 여느때와 달리 대피소의 산객들이 부지런히 움직이지 않는다. 그간의 경험으로 보자면 새벽 4시부터 출발 채비를 하는 사람들이 꽤 되는데 이번엔 그렇지 않았다. 우리가 출발하기 전에 나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안개 가득 낀 날씨와 전날 맞은 비로 좀 더 여유를 가지는 듯 하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다. 대피소를 떠나자 마자 곧이어 맞은편에서 오는 분들을 마주했는데 그 분들은 벽소령대피소에서 새벽 4시 20분에 출발했다고 한다. 두시간 남짓 걸린 셈이다.






한 20분 즈음 지났을까. 드디어 조망이 터졌다. 전날 내내 빗속에서 고군분투하다 봐서인지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도 잠시뿐. 밀려오는 구름에 이내 안개속의 길이 이어진다.
 
벽소령까지 가는 길은 대체로 내리막으로 기억되고 형제봉(1462m)을 거쳐서 약 2시간이 걸렸다. 큰 오르막이 없어서 친구의 지체가 크게 없었다. 벽소령대피소에서 천왕봉 방향으로 떠나는 두명의 산객의 뒷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벽소령에 도착했다.(8시 28분) 문제는 이 무렵 다시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벽소령 대피소 직원은 지리산 일기예보는 의미가 없다고 했다. 비의 양은 커녕 비가 오냐 안오냐 정도만 맞아도 감지덕지라고... 어제의 강수량이나 오늘 비소식이 없는데 비가 오는 걸 보면 역시나...
벽소령 대피소에는 탐방객은 없었다. 캔 커피를 하나 먹고 대피소 직원에게 음정 하산 시간을 물어보니 2시간 반이면 간다고 한다. 그리고 택시편을 물어보니 친구가 택시기사라며 명함을 건네주었다. 음정이나 백무동에서 성삼재까지 택시비는 같은 값이다(4만원). 친구 녀석이 오는 내내 하도 힘들다며 쉬는 족족 온갖 앓는 소리와 욕을 해대는 통에 나는 어차피 천왕봉은 커녕 장터목까지 가기도 힘들 것으로 판단되어 음정으로 하산하려고 했다. 그러자 이 녀석이 나름 아쉬웠는지 세석까지 가자고 했다. 세석으로 출발하는데 빗줄기가 굵어진다. 무엇보다 신발이 다시 젖는게 부담이 되었는데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하니 우리는 급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회군이냐, 진군이냐. 음정으로 발길을 돌렸는데 몇 발자국 지나지 않아 다시 진군으로 결정했다. 하룻밤을 자고 난 게 아깝고 이제 와서 돌아간다면 너무도 허무할 듯 싶었다. 오전 9시 5분, 다시 진군이다. 배낭 커버를 다시 씌우고 하드쉘을 입고 모자를 쓰고 다시 무장을 했다. 이 후 2시간 동안 보슬비가 계속 내렸다.




칠선봉에 다다를 무렵 비가 그치더니 햇살이 든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장쾌한 경관이 펼쳐진다. 천왕봉, 제석봉이 깨끗한 솜사탕같은 구름에 가려 보였다 안보였다를 반복한다. 하루가 넘도록 오랜 비를 맞다가 이런 광경을 보니 그 감동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벽소령에서 하산 안한 걸 얼마나 다행으로 여겼는지 모른다. 비맞으며 고군분투한 모든 것이 이 장면 하나로 보상이 된다.




















지리산 능선의 단풍은 익을대로 익어서 꽤 볼만했는데 비와 안개에 가리워져 사진에 많이 담지 못했다. 햇살에 빛나는 단풍을 맛보진 못했지만 그래도 원없이 단풍구경 잘했다고 할 수는 있었다.














세석평전으로.






오후 12시 59분(예상보다 한시간이 지체되었다), 세석평전. 가슴이 다 시원하다.


세석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 1시 45분, 백무동으로 하산한다.
















세석에서 한신계곡 하산길은 매우 가파르다. 이 가파른 너덜스러운 하산길은 약 1.4Km 정도 이어진다. 그나마 내리막이라 빠른 속도로 올 수 있었는데 꽤 내려왔다고 생각하고 거리를 따져보면 기대보다 적은 거리밖에 못왔음을 깨닫고 실망하곤 했다. 이런식의 반복을 몇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지긋지긋하게 길고 긴 하산길이다.(세석에서 백무동 하산길은 6.5Km)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것은 풍부한 수량이 넘쳐나는 계곡 물소리와 수 많은 폭포들, 계곡길을 따라 펼쳐진 멋진 단풍들로 눈요기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실로 기대 이상으로 멋지고 아름다웠다.

백무동 탐방소 도착 시간은 오후 4시 56분. 미리 연락한 택시 기사분이 대기해 있었는데 얼마나 반갑든지… 이렇게 28.7Km의 지리산 여정을 마쳤다.


산행루트 : 성삼재-노고단고개-연하천대피소-벽소령-세석-한신계곡-백무동
총 이동거리 : 28.7km

2016-10-1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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