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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陰者는 百代之過客이라. 세월이란 것은 영원한 과객이라. 김선호는 영원한 과객의 흔적을 기록한다.

진시황 진품 유물전

김선호 2004.08.06 23:56 조회 수 : 1168 추천:90

[2004년 8월 6일]

전시 장소 : 대전 엑스포 공원 무역 전시관
전시 기간 : 2004년 6월 11일 ~ 8월 29일(전시기간내 휴관일 없음)

진시황을 모르고 중국을 안다고 하지 말라... 이번 유물전을 보고 느낀점을 한마디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위와 같이 말하고 싶다. 어디서 들은 듯한 얘기가 그냥 튀어 나온 것 같기도 하고...
여하튼 2000여전에 그러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진시황이기에 그 이름만으로도 묘한 흥분감이 들어 진시황 진품 유물전을 갔다 오게 됐다.

병마도용 발굴 현장 모형도

1974년 봄 중국의 한 농부가 우물을 파다가 발견한 이 어마어마한 "지하 유령 군대"는 그 해 가을부터 발굴이 시작됐다고 하는데 현재까지 30%정도 발굴이 되었고 나머지는 발굴하지 않았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7000여 도용(陶俑 : 질그릇도, 허수아비용)들이 다 제각각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과 실제 크기이며 매우 섬세하게 표현되었다는 점이다.




Fig. 1 - 병마도용 발굴 현장 모형도.


Fig. 2 - 전차병사도용. 이 병사는 최하 계급이라고 하는데 계급의 구분은 머리 모양으로 한다고 한다.


Fig. 3 - 최고 계급인 장군 도용.


Fig. 4 - 도용의 안은 텅 비어 있다. 속이 차면 굽는 과정에서 파열이 일어나기 때문에 도자기와 같이 속을 비웠다고 한다. 마(馬)도용에서도 보면 말 위에 구멍이 있는데 굽는 과정에서 내부의 증기를 빼내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각 도용들은 머리와 팔을 분리할 수 있는데 제작한 도용들을 운반하기 쉽게 하기 위함이란다. 하나에 무게가 150~200Kg정도 한다니까...


Fig. 5 - 병마도용. 각 갱에는 말 4마리가 이끄는 전차부대가 있었다.




Fig. 6 - 채색 때문에 몸은 없지만 그 유물의 가치가 매우 크다는 바로 그 용두. 아래 홍보용 그림을 보면 용두의 머리 모양이 오른쪽으로(보는이 관점) 향해 있고 내가 찍은 위의 진품 사진을 보면 왼쪽으로 향해 있다. 너무도 귀해서 사진 찍을 때의 빛이 유물의 수명을 단축할 우려가 있다고 하여 거울에 반사된 거울상을 찍은게 아래의 홍보용 사진이다. 그 만큼 귀한 것이라고 한다. 사진 촬영을 금했지만 나는 그냥 바로 찍어 버렸다. 물론 플래쉬는 터뜨리지 않았다. ㅡ,.ㅡ


Fig. 7


Fig. 8 - 2분의 1로 축소한 청동 유물의 모형. 실제 유물은 산산히 조각나 있어 복원하는데만 8년이 걸렸다고 한다. 따라서 중국에서 다른곳으로 옮기기는 불가능했다고.




Fig. 9 - 세계 최초로 공개했다고 한 돌갑옷과 돌투구. 진나라때는 투구를 쓰지 않았었다는 기존의 학설을 뒤집었다고...


Fig. 10 - 기적의 문관용. 이 역시 세계 최초 공개라고... 기적의 문관용이라 불리는 이유는 이 도용의 눈빛때문이라고 한다. 눈빛을 자세히 들여다 봤는데 거 참...  또 진시황시절 무관용만이 아니라 문관용이 발견된 것은 놀라운 것이라고...






Fig. 11 - 사진 촬영 코너에서 차례로 민정, 기영, 나

진시황을 다시금 생각케 할 수 있었던 관람이었다.

진시황?
중국 진(秦)나라 왕(BC 247∼BC 221), 진제국(秦帝國)의 초대 황제(BC 221∼BC 210). 성은 영. 이름은 정(政). 신해혁명에 이르기까지 2000년 이상 존속된 황제지배체제의 창립자다. 시황제는 시호이며, 생전의 정식 칭호는 ‘황제’다.

13세에 권좌에 오른 진시황(秦始皇)은 한 위 조 초 연 제나라 등 6국을 물리치고, 군현(郡縣)제도를 시행하면서 중국 최초의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하고 대제국을 건설한다. 그의 나이 39세였다. 그리고 자신을 진시황이라 부르게 하였다. 맨 처음 황제라는 말이다. 춘추전국시대 이전에도 중국에는 하(夏) 상(商) 주(周) 등 여러 왕조가 있었지만 각 지역 제후들과 권력을 나눠 갖는 분권적 제국운영에 불과했다.

그러나 진시황은 도량형과 화폐를 통일하고, 북부지역 소수민족들의 잦은 침략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증축 정비하여 방대한 장성을 건설하는 한편 상업을 장려하고 남서부로 원정을 벌여 진의 통치영역을 서남부, 동남 연해지방, 광동성까지로 확대한다.

분서갱유(焚書坑儒)
책을 불사르고 선비를 묻는다는 말로 진시황의 폭정을 대변하는 말이다. 진시황은 똑똑한 사람들이 많으면 정치를 하기 힘들다고 생각하고 멍청한 백성들을 만들고자 책을 불사르고 지식인들을 생매장했다. 나는 지금까지 분서갱유를 이렇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유물전에서 본 분서갱유에 대한 변명(?)은 의학서, 기술서, 농업서를 제외한 시서를 불태웠고 못된(?) 유생들을 생매장한건데 후 대 유생들의 과장이 없잖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잘했다는 건 아니고...

오늘, 돈 만원으로 꽤 재미난 체험을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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