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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陰者는 百代之過客이라. 세월이란 것은 영원한 과객이라. 김선호는 영원한 과객의 흔적을 기록한다.

6월 6일, 지난 3월 초에 상범이와 예봉산, 예빈산을 다녀온 뒤로 이 녀석과 오랜만에 산행 약속을 잡은 날이다. 늘상 "한 번 또 가야지" 라고 입버릇처럼 되뇌이곤 했는데 정작 다시 실행에 옮기기 까지 근 3개월이 걸린 셈이다. 날은 잡았지만 속리산으로 전격 결정한 것은 바로 엊그제 산행 전날이었다. 우리는 문장대에서 거리가 짧은 화북분소에서 시작해서 백두대간 능선을 따라 갈령까지 가기로 했다.

야속하게도 오후 3시경 부터 속리산에 5~9mm 비소식이 있었는데 웬일인지 거의 정확하게 시점도 들어 맞았고 비의 양도 그럭 저럭 맞췄다. 예상시간보다 늦어지면서 종국에는 엉덩이를 적시고 말았다.(하드쉘로 커버가 되었지만 배낭커버를 준비하지 못한 탓에 물을 머금은 배낭이 결국 엉덩이로 흘러내려 엉덩이를 완전히 적시고 말았다. 산행을 마칠 무렵 오줌싼 어른의 꼴이 되었다)

 

새벽 5시 50분에 집을 나서서 상범이를 광교중앙역에서 픽업하고 갈령으로 향했다. 이동중에 콜택시(상주, 화서 개인 콜택시)를 검색해서 기사분과 통화를 해 보니 갈령에 주차를 하고 화북에서 오르는 것이 낫다고 한다. 그래서 갈령에 차를 대고 화북으로 택시 이동을 했는데 나중에 산행을 마치고 보니 갈령에서 출발했다면 큰 고생을 할 뻔 했다. 천왕봉에서 부터 형제봉을 막바지로 하고 갈령으로 하산하는 길이 대략 8.5km 정도였고 부지런히 이동을 해서 걸린 시간이 꼬박 4시간인데다 천왕봉에서의 급격한 경사, 능선의 끝없는 오르 내림, 막바지 가파른 형제봉(갈령에서 보자면 시작하자마자 엄청난 된비알길이 되는 것), 능선을 감싸고 있는 우거진 나무들로 조망이 없는 점 등을 감안하면 갈령 출발 보다는 갈령 도착이 여러모로 나은 선택인 것이다.

 

화북에서 출발한 시각이 오전 9시 23분, 휴식 시간 1시간 46분을 포함해서 화북분소~갈령까지 8시간 45분이 걸렸다.

화북에서 문장대까지는 2시간이 채 안걸렸다. 지리하게 끝없이 올라야 하지만 그래도 길이 잘 닦여 있고 짧은 거리인 것을 위안삼아 무난히 오를 수 있다. 중간 중간에 뜬금없이 등장하는 어마어마하게 큰 바위 덩어리 - 국내에서 제일 큰 바위 덩어리(바위벽이 아닌)는 바로 속리산에 있는 게 아닐까 생각된다 - 을 감상하며 갈 수 있다.

 

문장대에 오르니 날은 흐렸지만 가시거리가 굉장히 좋아서 그야말로 장쾌한 풍광이 펼쳐졌다. 남쪽으로 천왕봉 능선, 북서쪽으로 관음봉, 묘봉 등, 그리고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까지... 저 멀리 유명한 봉우리들이 꽤 있을 터인데 정확히 어디가 어떤 봉우리인지까지는 보지 못했다. 11시 전후로 비가 한 두방울 떨어지는 게 웬지 불안불안했다. 예보보다는 이른 시간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바람에...

그리고 소백산의 칼바람 저리 가라 하는 엄청난 바람을 맞았다. 여름 맞나 싶을 정도로 서늘하기 그지 없는...

 

문장대 바로 아래 넓은 광장에는 식사 등을 할 수 있게 테이블이 마련이 되어 있다. 속리산은 초등학교 때 부모님과 그리고 12년전에 회사 동료들과 온적 있는데 12년전에는 바로 이 곳에 매점이 있어서 파전을 시켜서 준비해 간 막걸리를 먹었었는데... 이걸 없앴다. 생태복원을 위해 2008년에 없앴다고 한다. 잘 된 일이다. 간단히 반주와 함께 요기를 하고 천왕봉을 향해 갔다. 신선대에 이르니 웬걸... 여기에는 매점이 여전히 있다. 애당초 어떻게 생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곳도 철거가 됐으면 한다.

 

천왕봉으로 가는 능선은 꽤 재미도 나고 경치도 참 좋다. 천왕봉에 이르렀을 때 전체 이동 거리는 7.2Km 정도가 되었다.

천왕봉에서 약 2시 무렵에 하산을 시작했다. 급경사 내리막에다 길이 전체적으로 확 좁아진다. 내려가는 내내 반대편에서 왔으면 참으로 힘들었겠구나 생각했다. 1058m 천왕봉 정상에서 쭉쭉 내려가서 600m 대까지 내려가고 다시 6~700m 대의 능선이 형제봉(826m) 전까지 지리하게 계속된다. 천왕봉까지 탁 트였던 조망은 나무들로 가려져 없어지고 울창한 숲으로 성인 남자 키라면 고개를 숙이고 지나가야 하는 곳이 즐비해서 힘이 든다. 천왕봉에서 하산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어떤 산악회에서 온 몇 몇 무리들을 마주쳤는데 말미의 일부는 멀쩡한 길을 두고 숲을 헤치고 이상한 곳으로 가는게 아닌가. 참으로 의아하게 생각을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에게 큰소리로 외친다. "중간에 오른쪽으로 곧 바로 하산하는 길이 나오나요?" 답변을 해주었다. "예! 천왕봉 넘으면 장각동으로 하산하는 길이 있습니다" 그러자 다시 외친다. "그건 저도 아는데요, 천왕봉 넘기전에는 없나요?" "네, 없습니다."

힘들지만 2~30분 정도 오르면 천왕봉인데 많이도 힘든가 보다 했다. 그런데 이 천왕봉 이 후 능선을 타면서 우리는 그들의 심정을 이해했다. 정말 참으로 힘들고 지리한 길이었다. 지도상으로 보면 천왕봉~형제봉 능선과 천왕봉~장각동 능선이 나란히 있는데 아까 그들은 힘들어서 천왕봉을 포기하고 되돌아갈 순 없으니 아마도 천왕봉을 오르지 않고 장각동으로 무작정 향해 가려고 했던 것 같다. 실제로 어떤 선택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오후 3시가 되자 빗줄기가 굵어졌는데 그래도 불편하지는 않았다. 마른 능선의 흙을 적셔주는 느낌? 하지만 이 후 3시간을 더 나아가는 동안 빗줄기는 점점 굵어졌고 결국 위에 설명한대로 엉덩이를 흠뻑 적시고 말았다. 피앗재를 지나 형제봉 목전에서 큰 배낭을 매고 홀로 진군하는 노인(?)- 피부는 나의 것보다 맨들맨들할 정도로 매끄러웠지만 하얀 백발의 수염을 기른 차림-을 만났는데 백두대간 길을 홀로 하고 계시는 분이라고 했다. 멋졌다. 한 번 오르면 열흘 정도를 하시고 쉰다고... 빗속을, 어두컴컴해지는 시점에 혼자서 큰 배낭 짋어지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인사를 하고 잘생긴 얼굴에 미소를 머금으며... 지나온 형제봉의 경사도를 설명해 주었다. 기상 상황이 안 좋으니 오늘은 적당히 하산해야 하는 것 아닐까라고 얘길하니 그러잖아도 피앗재에서 내려가 산장으로 간다고 했다.

 

마지막 관문 형제봉을 힘겨이 오른다. 형제봉 세워진 작은 나무 팻말에 갈령 삼거리 하산길 표기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갈령에 이르렀을 때 아침에 보았던 갈령 비석 역시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6월의 속리산 백두대간 산행... 천왕봉~형제봉 구간이 참 힘들었다. 좁은 길, 가파른 천왕봉 하산, 끝없이 오르 내리는 능선, 좌우로 빽빽한 수풀들, 얼굴 높이에 나뭇가지들과 잎사귀들이 고개를 숙이게 만들고, 가도 가도 끝없는 길, 거센 비바람...

하지만 속리산에 있었던 것 만으로 너무 좋았다.

 

15.7km 산행을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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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북분소 ~ 문장대 오름 길 큰바위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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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대에서 본 백두대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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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대에서 본 칠형제봉, 신선대, 비로봉, 천왕봉.(좌측부터)

속리산은 천왕봉, 비로봉 두 봉우리 이름을 가진 유일한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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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대에서 본 관음봉, 그 뒤로 묘봉과 상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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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봉으로 가는 능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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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봉에서 본 문장대 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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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령에 도착해서... 물에 빠진 생쥐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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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경로 (15.7km)

 

2017-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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