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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陰者는 百代之過客이라. 세월이란 것은 영원한 과객이라. 김선호는 영원한 과객의 흔적을 기록한다.



12월 26일이 크리스마스 대체 휴일인데다 그것도 월요일이어서 그야말로 등산하기에는 딱 좋은 날이다. 형철이네는 아직 방학식을 하지 않아서 학교에 가는지라 산에 간다고 해 봤는데 아내가 불평을 하지 않는다. 기회는 찬스다. 2주전부터 회사분들과 등산을 계획했다. 처음에는 대야산, 조항산, 청화산으로 이어지는 17km 정도의 산행을 계획했다가 함께 하실 채강석 부장님께서 아무래도 몸상태를 고려했을 때 무리일 것 같다며 다른 코스를 주문하셨다. 마침 1주일전부터 산행 당일에 중부 이남에는 비 소식(내내 날이 좋다가 하필 그 날을 찍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을 예보 하고 있었고 그나마 중부 지방, 강원도 부근만 오후에 1~4mm의 눈 또는 비가 예보되었다. 그나마 비보다는 눈이 올 확률이 더 높을 것 같아 강원도 쪽 산을 골랐는데, 바로 함백산이다. 이렇게 해서 채부장님, 최윤 차장님과 그리고 나까지 세명이 함께 하기로 했다.

기상청의 예보가 의외로 적중하는 바람에 이러한 수정된 산행 계획도 그대로 드라마틱하게 이어졌다. 드라마틱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날씨는 의외로 쌀쌀하지 않아서 날머리로 잡은 두문동재로 차로 이동하면서 구질구질한 산행이 되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기우였고 만항재에서 산행을 시작하면서 흩날리기 시작한 눈이 함백산 꼭대기에서는 제법 쌓이는 눈으로 변했고 이 후 산행을 종료하는 내내 조금씩 꾸준히 내려주어서 나름 운치있고 환상적인 눈 산행을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국에 비가 왔지만 강원도의 산에만 눈이 왔다는 사실도 크게 다가왔다. 더구나 온도는 비가 아닌 눈을 내릴 수 있게 하는 정도의 마지노선 정도로 크게 춥지도 않았다.

두문동재에 차를 두려고 했는데 오후에 예보된 눈 또는 비를 믿어 보기로 하고 눈이 쌓일 것을 예상해서 아래쪽인 두문동재 삼거리 부근에 차를 대고 미리 불러 둔 택시를 이용해서 만항재로 이동했다. 만항재 주차장에서 시작이다. 몇명의 무리들이 산행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먼저 출발한 후로 그들을 다시 보진 못했다. 다만 부부로 보이는 남녀 두 명과 함백산 정상까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함께 했을 뿐이다. 그들도 함백산 정상 이 후로는 다시 만나진 못했다. 산행 시작부터 카메라를 꺼내 들었는데 만항재에서 출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하더니 그치질 않아 카메라에 눈이 금새 쌓이곤 했다. 결국 카메라는 가방 속으로 넣을 수 밖에 없었고 이 후로는 휴대폰으로만 촬영을 했다.
 
만항재에서 고한쪽으로 조금 내려가다 보면 우측으로 태백 선수촌으로 이어지는 차도가 있다. 만항재에서 함백산까지 이어지는 등로는 바로 그 차도에서 약간 우측으로 비껴나 있는 능선길이다. 매우 평이한 이 산책길 코스는 1.6km 정도 이어지고 다시 차도와 만나게 된다. 약 30여분이 소요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함백산 정상을 향한 좀 가파른 길이 나오고 역시 30분 정도 오르면 함백산 정상에 다다른다. 정상 바로 아래는 KBS 중계소가 있어 이 곳까지 차량 통행을 위한 임도가 등로와 따로 나 있다. 함백산 정상에 다다를 무렵의 고원의 바람은 거세게 불었다. 탁 트여서인지 강한 북서풍의 눈보라가 몸과 얼굴의 측면을 강타했다.


그 부부가 우리보다 먼저 다다라 그들이 찍어준 함백산 정상석에서 우리 세명의 사진이 이번 산행에서 유일하게 세명 모두 함께 한 사진이 되겠다. 강한 북서풍으로 눈발이 측면을 강타하는 게 사진에 잘 나타나 있다. 탁트인 함백산에서의 조망은 포기할 수 밖에 없었지만 눈발이 점점 거세지면서 본격적인 눈산행이 시작되었다.

두문동재는 북쪽으로 향해 나아가면 된다. 임도를 건너 이어진 등로를 따라 완만히 내려간다. 주목 군락이 나오는데 눈과 어우러진 주목은 그야말로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눈이 제법 쌓여서 등로를 가렸는데 채부장님이 사전에 다운 받아 놓은 누군가의 GPS track을 따라 가다 보니 길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의 길들이 이어졌다. 작은 나무들이 길을 가로 막는가 하면 나뭇가지들을 좀 제치고 가야 하는 그런 길 말이다. 뭔가 이상하다는 얘기들이 오갔는데 내가 네이버 지도를 사용하는 GPS 어플을 보니 우리는 지도상 등로(네이버 기준)에서 오른쪽으로(진군 방향) 벗어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되돌아가는 대신 지도를 보면서 등로를 향해 가로질러 가 보았다. 길이 아니라 작은 나무 가지들을 제치고 몸을 숙이고 작은 나무들을 가로질러 넘고 해서 나아 갔는데 길은 점점 더 막히고 채부장님과 최차장님은 이미 가던 길을 가버렸는지 사라져 버렸다. 지도를 보니 바로 몇미터만 더 나아가면 등로가 나오는데 나무들로 가로막혀 도저히 갈 수가 없고 되돌아가자니 몇 분동안 힘들게 헤치고 지나온 게 막막해 보였다. 눈은 계속 쌓여 지나온 흔적을 지우고 있었다. 눈 앞에 작은 암벽 너머 고함소리는 들리긴 했지만 순간 겁이 나기도 했다. 이상하게 두 분이 걸어오는 전화를 받으면 음성이 들리지 않았다. 아 이렇게 순식간에 길을 잃을 수도 있겠구나 했다.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어도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다시 눈 발자욱을 보고 되돌아갔는데 참 희안하게도 내가 지나 오지 않은 것 같은 길에 나의 발자국들이 나 있었다. 나중에 다시 보니 네이버 지도에는 나오지 않는데 다음 지도에는 중함백으로 가는 길이 두갈래로 나란히 나와 있다. 우측길이 점선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우리는 그 쪽으로 지나온 셈이고 나는 네이버 지도만을 보고 굳이 네이버 지도상의 등로롤 찾아 헤매다 되돌아 온 것이다.


산행 시작 후 2시간 정도 되어 자리 잡은 점심 휴식터. 거대한 구상나무 아래였는데 눈을 피하게 해줄 정도는 아니었지만 거대한 쉘터 같은 느낌도 나고 아주 운치가 있었다. 눈 밭을 예상하고 가져간 의자는 앉는 대신에 음식 테이블로 활용을 했고 우리는 서서 채부장님이 가져오신 진한 위스키 한잔으로 고단한 몸을 달랬다. 눈속에서 위스키와 육포 한 조각. 더 바랄 것도 없는 최고 그 자체다. 김밥과 컵라면, 그리고 김치로 요기를 하고 다시 출발했다.






오후 1시 53분, 중함백(해발 1505m)에 도착했다.




중함백에서 조금 내려가면 전망대라는 팻말이 나오는 곳이 나오는데, 날이 청명했다면 꽤나 좋은 경치를 감상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경치 구경은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고 눈을 맞으며 지나치는 것으로 만족했다.






오후 2시 2분. 함백산 등로는 고산지대라 그런지 탁 트인 고원, 그리고 판타지에 나올 법한 기괴스럽고 희안하게 생긴 나무들이 많아 매력적이었다. 꺾어진 참나무 가지가 그대로 자라서 희안한 모양을 만든다든지... 움직이는 팔다리를 가진 나무 모양 등…




오후 2시 34분. 4거리 이정표가 나오는데 함백산 방향이라고 씌여 있는 팻말의 거리는 명백히 오류로 보인다. 함백산 정상에서 분명히 2.2km보다는 더 온 거리다. 누군가 그 밑에 3.6km라고 써 놓았다. 함백산이 최근에 태백산과 함께 묶여서 국립공원으로 승격이 되었는데 아직까지 보완은 좀 미흡한 모양이다. 이정표도 동일한 위치에 서로 다른 분위기와 스타일이 2개씩 있는가 하면 이정표에 씌여 있는 글자가 그냥 "등산로" 이런식의 무의미한 팻말일 뿐인게 즐비했다. 심지어 "등산로"라고 씌여 있는 한글 밑에 "A pathup a mountain"이라는 이상한 영문 표기까지 밑에 곁들여 놓기도 했다.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이정표인지 정말 궁금했다.








오후 3시 55분, 은대봉에 도착했다. 해발 1442.3m.


은대봉 표지석에서 찍은 채부장님과 최차장님.


오후 4시 27분, 드디어 두문동재에 도착했다. 예상한대로 눈이 쌓여 있어 차를 이곳에 댔으면 고생 꽤나 했을 뻔 했다. GPS상으로는 1281m가 찍히는 곳인데 실제로는 1268m로 소개되어 있다. 여기서부터 두문동재 삼거리까지 차로를 따라 지그재그로 가면 꽤나 긴 거리를 또 가야하는데 지그재그의 차로를 가로지르는 산길이 나 있어 그리로 내려가면 좀 더 빨리 내려갈 수 있다. 대신 경사가 좀 급해서 조심해야 한다. 이 가로질러 내려가는 길만 해도 1.2km 이상이나 된다.




다음의 겨울 산행을 기약하며...
2016년 마지막 산행을 마치며...


산행 루트 : 만항재 주차장 ~함백산 기원단~함백산(1572.9m)~중함백(1505m)~은대봉(1442.3m)~두문동재(8.1km)~두문동재삼거리(총 9.3km)
이동시간 : 4시간 38분
휴식시간 : 2시간 2분

2016년 12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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