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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陰者는 百代之過客이라. 세월이란 것은 영원한 과객이라. 김선호는 영원한 과객의 흔적을 기록한다.



지난 달 12월 26일에 회사분들과 함백산 산행 후  술과 저녁을 거나하게 먹고 귀가하는 길에 상범이로부터 받은 카톡 메시지. “1월 중 태백산 or 소백산 눈꽃산행 어때?”. 이렇게 해서 1월 셋째 주말인 1월 21일에 태백산을 함께 하기로 즉석에서 결정이 되었다. 언제나 그렇 듯 좀 보태서 말하자면 산행 재미의 반은 계획을 세우는 일이 차지한다.
시간 코스와 산행 코스, 그리고 당일이냐 1박이냐를 두고 숱한 의견 교환끝에 결론은 태백산은 안 가는 것으로 했다. 태백 눈꽃 축제 기간인데다 주말이라면 불을 보 듯 뻔하게 태백산은 출근길의 신도림역과도 같을 것이라는 의견에 서로 이의가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눈소식이 있었던 1월  첫 주말에 인터넷 포럼 등에 올라 온 태백산 동정 사진들은 이러한 결정을 확고하게 했다.
상범이의 고등학교 친구인 병관이가 합류하게 되고, 우리는 대관령의 20여km 산행 코스로 계획을 세웠다. 눈이 많이 온다면 선자령의 눈 꽃을 느끼려는 전국의 산꾼들이 몰리긴 하겠지만 태백산만큼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산행 목표일 주가 시작되자 일기예보는 산행 전날인 금요일에 눈이 오는 것으로 예보를 했다. 운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날짜가 다가올 수록 예보상 적설량이 커졌고 실제로 금요일이 되자 강릉을 비롯한 강원도 일대는 큰 눈으로 일대가 혼잡해지고 많은 국립공원들의 탐방 제한 안내가 공지될 지경이었다. 과유불급이라…
나는 각오가 다져지는데 눈꽃을 기대해오던 상범이는 오히려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더구나 병관이는 산행 전날 등산화며 스틱이며 이런 장구들을 사고 있는 마당에 원안을 강행하기에는 무리로 판단했다.
그래서 눈폭탄 수준이라는 대관령쪽보다 더 남쪽인 두문동재~건의령 산행을 제안했고 친구 녀석들은 낯선 이름 탓에 내켜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적당한 적설량과 아름다운 경치, 초급자를 위해 힘들면 탈출구도 있다라는 점을 내세워 쉽게 설득할 수 있었다. 나도 처음 가보는 코스인지라 잘은 몰랐지만 녀석들은 그래도 조금이나마 산행 경험이 많은 내 말을 철썩같이 신뢰하는 듯 했다.
인천, 서울, 용인의 접점인 판교에 모여서 가기로 했는데 이른 새벽 3시에 인천을 출발해서 용인에 사는 상범이를 태워서 병관이를 판교역에서 만나 픽업을 했다. 새로 개통한 광주-원주 고속도로로 진입해서 경기광주휴게소에서 아침을 먹었다. 점심용으로 김밥을 싸가지고 가려고 했는데 김밥집 오픈 시간은 한 두시간이 더 걸릴 거라는 말에 실망을 했다. 사실 전날 휴게소에 전화를 했을 때는 김밥집은 24시간 오픈이라는 말을 듣고 싸가려고 생각한 것인데, 이렇게 실상은 달랐다. 여행 중에 발생하는 숱한 예기치 않은 일들 중 하나일 뿐이다.
정선의 두문동재(1268m)는 차로 오를 수 있는 고지 중의 하나인데 문제는 눈이 오면 이 한적한 길은 제설작업에서 늘 예외가 된다는 것이다. 두문동재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진입해서 오를 수가 있는데 역시나 전날 내린 눈이 한가득했고 차는 백여미터 올라가자 바퀴가 헛돌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두문동재 삼거리에 차를 두고 올라야 했다. 두문동재 삼거리에서 두문동재까지의 차로는 지그재그로 약 3키로 정도를 올라가야 한다. 등로는 이 지그재그길을 가로질러 나 있어 걸어서 간다면 굳이 차도를 따라 갈 필요는 없고 좀 가파르게 올라야 하지만 거의 직선으로 가로질러 오르면 된다.

두 번째 예상치 못했던 상황은 상범이가 여름 등산화를 신고 온 것이다. 이 녀석과는 2015년 11월에 눈 덮인 지리산에 오른적이 있었는데 그 때 신고 온 등산화라고 하는데 방수도 안될뿐더러 얇아서 차에서 내리자마자 발이 얼어붙는 느낌이라고 했다. 눈 덮힌 지리산을 아무런 문제도 없이 다녀왔다는 기억만으로 간과한 부분들은 바로 기온이었다. 그 때는 눈은 있었지만 그렇게 춥지는 않은 영하 1도 내지는 영상의 기온이었지만 이번은 달랐다. 일기예보상으로도 한파 예고를 했긴 했지만 해가 비추기 전 정선의 아침 기온은 영하 17도였다. 콧속의 점막이 쩍 얼어붙는 느낌과 얇은 운행용 장갑 장갑으로는 도저히 커버가 안되는 그런 날씨 속에 이 녀석의 여름 등산화는 이 녀석의 발을 순식간에 얼어붙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좀 참고 걸어가면 열이 나서 괜찮을까 싶어서 좀 더 나아갔지만 녀석은 도저히 안되겠다며 양말을 더 껴 신었다. 그리고 발을 녹여야겠다며 핫팩을 발에 댔지만 이런 저온에서는 핫팩의 발열 효과는 미미한 것 같았다. 다행히 두문동재 바로 밑에 컨테이너 박스로 된 휴게소가 있는데 8시가 좀 넘은 이른 시간인데 다행히 문을 열었다. S는 연통으로 나오는 연기가 그렇게 따뜻하게 보일 수 없었을 것이다. 쌍화차를 먹으며 상범이는 난로앞에서 언발을 녹였다.

휴게소에서 나와 두문동재 표지석에서 사진을 찍고 본격적으로 산행이 시작되었다. 아무도 밟지 않은 새하얀 길이다. 가시거리도 좋은데다 아침햇살이 본격적으로 드리워지면서 우리는 기대감에 한 껏 부풀었다. 눈도 대관령쪽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쌓여 있어서 한 발 한 발 눈을 밟고 또 헤치고 가는 기분도 좋았다. 


두문동재에서 대덕산, 한강 발원지인 검룡소 탐방로는 5월 1일~10월 31일까지만 이용 가능하다고 한다. 이 곳에서 금대봉 방향이 백두대간길이다. 금대봉으로 오르면서 고도가 올라가면서 눈의 양은 점점 많아져 점점 힘겨운 러셀을 해야 했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몇 명의 무리들이 어느새 뒤이어 올라오고 있다. 줄이 꽤 길었는데 몇 마디 말을 건네며 물어보니 이들은 청주에서 온 산악회원들이었다. 버스 한차로 왔으니 40명은 지나간다는 얘기인데 한 열명 정도가 속도전을 하 듯 올라온 것이다. 맨 앞에 선 사람에게 인사를 하며 한 두마디 건네었는데 뒤에 따라오는 사람이 많다며 민망하리만치 대화를 급하게 종료하고 서둘러 지나쳐 갔다. 안내산악회든 산악 동호회든 주어진 시간속에서 산행을 마쳐야 하는 부담을 가지고 해야 하는 것이 이유라면, 내가 하고자 하는 산행과는 거리감이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이들이 고마웠던게 구간 구간 지형 특성에 따라 바람이 많이 부는 곳에는 바람에 쓸려 쌓인 눈의 깊이가 무릎 이상이 되기도 하고 심지어 허벅지를 덮어 버리기도 하는 곳도 있었는데 이 씩씩한 청주 산악인들께서 다 헤쳐 주시고 가셨다. 선발대로 보이는 그들은 정말 빨랐다.

오전 9시 40분. 금대봉(1418.1m)에 도착했다. 앞서 도착한 청주분들이 표지석 앞에서 한명 한명씩 사진을 찍는데 이 또한 괴리감이 크게 다가온 것이, 대장이 표지석 앞에 회원들을 줄 세운 후 한 명씩 인증샷을 찍어주고 “다음”이라고 외치면 찍은 사람은 쏜살같이 금대봉을 내려가면서 그 다음 사람이 표지석 앞에 반사적으로 서서 포즈를 취하는 것이었다. 이런식으로 각자의 사진들을 모두 찍었는데 10명정도를 찍는데 30초가 채 걸리지도 않은 것 같았다.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우리 셋을 힐끗 쳐다 보았는데, 인지상정으로는 “찍어 드릴까요?” 라는 말을 건네었을 터인데, 그도 그럴 것이 카메라를 들고 찍어주기를 갈구하는 표정과 몸짓을 보였기 때문인데, 그는 고개를 홱 돌려서 쏜살같이 금대봉을 떠났다. 정말로 그 순간 떠올랐던 느낌은 바로 Pink Floyd의 The Wall에 수록된 Another Brick in the Wall의 Part 2에 해당하는 뮤직 비디오에 나오는, 똑같은 가면을 쓴 학생들이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같은 곳에서 기계적으로 걸어 가다 차례로 떨어지면 쏘세지로 가공되어 나오는 바로 그 장면 말이다. 삭막한 느낌, 그 자체다. 어릴적 아버지를 따라 산에 갔을 때를 기억해보면 확실히 지금과는 다른 느낌이다. 물론 지금이 그 때 보다는 나은 환경이긴 하지만 이럴 때는 그 시절이 그립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오기도 한다. 몇 분 후에는 청주의 두번째 그룹이 올라왔는데 이들은 선두 그룹(옆도 안보고 달리는 말과 같은)과 달랐다. 수다스러운 아주머니들이 친근하게 “세 발자국이 이 세분이었구나!” 라면서 이런 저런 말을 걸었다. 그리고 일행의 어떤 아저씨께서는 사진을 흔쾌히 찍어주면서도 사진 실력이 없으니 다른 분에게 한 번 더 찍어주라는 요청을 해주기까지 했다.

두문동재에서 북쪽으로 나아가 금대봉에 다다르고 금대봉에서는 백두대간길을 따라 북동쪽으로 하산하다가 수아밭령, 비단봉을 지나면서 방향이 완전히 동쪽으로 바뀐다. 금대봉 하산길은 북동쪽 면이어서인지 바람에 쌓여 깊은 눈 구간이 많았다. 청주의 선발대 분들이 러셀해 놓은 길을 지나치다 보면 쌓인 눈의 벽의 높이를 보며 놀라기도 했고 동시에 이 분들 덕에 그나마 쉽게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조용한 산자락에 약간은 수다스럽게 뒤이어 오던 분들께도 양보를 하고 우리는 맨 뒤로 물러서서 좀 느긋하게 갔다.


수아밭령에 도착했을 무렵 앞서 나갔던 청주에서 온 분들이 담배를 끄며 떠났다. 결정적인 나쁜 인상을 심어준 장면이다. 수아밭령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용연동굴에 이른다. 우리는 잠시 서서 숨을 고른 후 다시 비단봉을 향했다. 이곳에서부터 비단봉의 오르막이 오늘의 산행 중에서 가장 가파른 구간이다. 비단봉 바로 목전에 진행 방향의 좌측으로 돌아 오르면 봉우리에 다다르는데 청주 선발대들 중 일부가 자칫 발을 헛디디면 천길 낭떠러지행으로 떨어질 곳으로 발자국을 내 놓았다. 육산길에 봉우리 바로 밑에 갑자기 등장한 바위길인데 바위 하나 높이가 허리까지 오니 발을 쩍 벌리고 올려서 딛고 손으로 그 위의 바위를 잡고 해야 하는 험로다. 부들부들거리며 조심조심 눈이 다져진 바위길을 오르고 보니 안전한 정로가 따로 있었던 것이다.














비단봉(1281m)에서 보는 경치는 이 날 산행 중 최고였다. 함백산 뒤의 태백산, KBS 중계탑이 있는 함백산 정상이 뚜렷이 보이고 은대봉, 두문동재, 금대봉, 지나온 백두대간 능선길이 한 눈에 들어 온다. 탁 트인 이 비단봉에서 한 동안 경치 감상을 한 후 우리는 다시 발길을 옮겼다.
비단봉을 내려가면 곧 이어 진행 방향은 남쪽으로 틀어지면서 햇빛을 많이 받게 되는데 수북히 쌓인 눈길이 햇빛에 반사되어 눈이 아플 정도로 눈이 부셨다. 선글래스를 끼고 조금 더 걸으니 숲속에서 홀연 빠져 나오게 되고 광활한 고냉지 채소밭이 펼쳐진다. 햇살 가득한 채소밭에 눈이 한가득 쌓여 있으니 그야말로 빛나는 설원이다.
청주팀들은 일찌감치 밭둔덕 아래 설원에서 진을 치고 점심 식사를 하고 있었고 반대편에서 오는 그룹들을 마주쳤다. 이들은 피재에서 올라왔으며 이곳까지 두시간 정도 소요됐다고 말했다.




점심 장소로 나무가 좀 우거진 쉘터 같은 곳을 찾아서 조금이나마 아늑한 장소를 원했는데 이 녀석들은 그럴만한 여유가 없는 듯 했다. 그냥 넓직한 적당한 곳에 가서 얼른 먹을 거리를 펼쳐 놓길 원했다. 그리하여 탁 트인 찬 바람 쌩쌩 부는 채소밭 한켠에 있는 창고 옆에서 찬 바람을 정통으로 맞으며 오들오들 떨면서 미지근한 컵라면에 차가운 김치, 그리고 술과 마른 안주로 허기를 채웠다. 그런데 역시 맛은 좋았다.








이제 매봉산으로 향한다. 채소밭에서 매봉산으로 향하는 짧은 오르막 구간에서 순간 순간 휘몰아치는 바람은 대단했다.










매봉산 백두대간 표지석을 지나 바람의 언덕이라고 명명된 곳에서는 지나온 능선길을 다시 한 눈에 볼 수 있다.  바람의 언덕을 지나 다시 매봉산을 오르게 되는데 매봉산 천의봉에 이르러 태백, 함백산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가 나온다. 간편한 차림의 연인들이 있기에 어떻게 왔냐고 했더니 차를 끌고 바람의 언덕까지 왔다고 한다. 삼수령(피재)쪽에서 차도가 나 있어 차를 끌고 쉽게 올라 올 수 있는데, 두문동재쪽과는 달리 이쪽 도로는 눈이 녹아서 차량 통행이 가능한 상태였다.








임도와 나란히 이어지는 등로를 타고 이제 삼수령으로 하산한다. 애당초 목표였던 건의령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B의 뜻에 따라 포기하고 삼수령에서 마치는 것으로 했다.
택시를 타고 두문동재 삼거리로 돌아오니 각지에서 온 산악회 버스들이 족히 10여대 이상은 되었다. 우리가 산행하면서 반대편에서 온 팀은 딱 한 그룹밖에 없었으니 아마도 대부분 함백산쪽에서 오는 산행객들을 위한 버스들로 추정이 되었다.

돌아오는 광주 원주 고속도로에서는 다시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는데 이 변화 무쌍하기도 한 날씨는 방금 겪은 산행이 마치 꿈같다는 생각이 들게끔 하기에 충분했다.

다음을 기약하며

2017-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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