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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陰者는 百代之過客이라. 세월이란 것은 영원한 과객이라. 김선호는 영원한 과객의 흔적을 기록한다.


아무런 준비도 없다고 즉석에서 결정되어 후다닥 진행되는 여행은 기대감도 급상승하기 마련이다.
줄 곧 친구와 동해안 2박 3일 자전거 라이딩을 타진해 오던 차에 여러 가지 이유들로 일정을 맞추기가 힘들었다. 그러다가 주말에 등산이나 가자 해서 3일전인 수요일에 국립공원 대피소를 알아봤는데 운 좋게도 소백산 대피소가 예약이 되었다. 예약이 되고 나니 친구 녀석이 갑자기 가족 모임이 있어서 아무래도 어렵겠단다.
마침 아내가 맨날 가족들 팽개치고 친구랑만 다닐 수 있냐며 불만을 토로하던 차 – 사실, 그건 절대 아니다. 친구와 하는 산행이나 자전거 라이딩을 위해 몇 주간의 주말 봉사를 열심히 하는데도 그런 건 까맣게 잊은 듯이 불평을 토로하곤 하는데, 이번엔 급작스러운 친구와의 주말 산행에 좀 더 화가 난 것 같다 – 에 아까운 소백산 대피소 예약을 취소하지 않고 대신 8살, 6살 꼬맹이들도 다 같이 하는 소백산 가족 원정을 단행키로 했다. 아내는 평소에 산을 싫어한다고 엄살을 피워온 탓에 내키지 않아 하면 큰 아이만 데리고 다녀올 작정이었다. 그러면 물론 작은 아이가 저도 가겠다고 했을테지만… 어쨌든 아내가 흔쾌히 수긍을 한다. 대피소는 처음이라면서 내심 기대하는 눈치다.
소백산 대피소의 정식 명칭은 제2연화봉대피소다. 사실 소백산을 한 번도 가 보지 않아서 대피소 위치부터 확인을 하는데 의외로 대피소 위치 정보가 국립공원 웹사이트의 소백산 페이지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다는 것에 놀랐다. 이름으로 추정해보면 제 2연화봉 부근에 있겠거니 하겠지만 대피소가 2015년 12월에 첫 개장을 한만큼 지도 등에 대피소 위치는 당연히 나와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아이 동반 예약 확인차 소백산 대피소에 전화를 했을 때 직원분께서 생각치 못한 부분이라며 나중에 업데이트를 하겠단다.
나는 아이들을 고려해서 토요일 오후 느즈막이 죽령탐방소를 들머리로 해서 대피소 1박 후에 연화봉 정도까지 갔다가 원점 회귀를 하는 루트를 생각했다.
비교적 꼼꼼하지만 게으른 나와 비교적 꼼꼼하지 않지만 나보다는 부지런한 아내가 초등학교 1학년생, 그리고 유치원생 아들 둘을 데려가면서 1박 2일 산행 준비가 얼마나 부실했는지를 간단히 얘기하자면 이렇다. 가족 산행 1박 2일로 결정한 수요일 저녁. 첫 대피소를 겪어 본다는 아내와 아이들의 설렘은 생각보다 컸다. 남은 시간은 이틀인데 등산 장비가 전무한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여러 가지를 준비\"했었어야” 했다. 편한 등산복, 등산화, 스틱과 아이들 신발 정도를 이틀내로 사두라고 했는데 아내는 건성으로 들었다. 아이들 일과와 여러 가지 이유들로 금요일밤까지 준비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급기야 토요일 아침에 내가 급한대로 옷 몇 개와 운동화, 먹거리까지 급하게 사가지고 출발할 수 밖에 없었다.
부랴 부랴 준비해서 출발했지만 언제나 여행의 시작은 큰 기대감과 희망으로 즐겁다. 중간쯤 다다라서 준비물들을 머리속에 되뇌였을 때 불길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는데, 몇 가지 중요한 준비물들을 놓고 온 것을 깨달았다. 고기는 준비되어 있는데 후라이 팬을 놓고 왔다. 젓가락, 숟가락도 놓고 왔다. 김치도 마늘도 놓고 왔다. 중간에 어디 마트라도 들러서 사서 가려면 적어도 1시간은 더 소요가 될 터이고, 그러면 입산 제한 시간은 오후 4시가 넘어갈 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휴게소에 들러서 1회용 나무젓가락, 숟가락만 사가지고 가기로 했다. 불편하지만 코펠 뚜껑을 후라이팬 대신 사용하기로 하고… 그런데 우리가 얼마나 덤벙대냐하면 휴게소에서 산 젓가락, 숟가락도 죽령에 세워 둔 차안에 놓고 올라갔다(다행히 대피소 직원께서 나무젓가락을 제공해 주셨다). 준비해 간 참외도 차안에 두었고…
날씨는 후텁지근했다. 며칠전부터 내린다던 비에 대한 예보는 하루 하루 지나면서 내일 비로 매일 바뀌더니 주말에 와서야 주말 날씨는 구름과 해 그림으로 바뀌어 있었다. 가는 내내 뜨거운 햇살이어서 살짝 산행이 걱정되기도 했다. 죽령고개에 오후 4시가 좀 지나서 도착했다.

산행시작 오후 4시 22분. 드디어 출발이다. 진입로부터 시멘트 포장길이다. 나중에 올라가서야 알았지만 이 시멘트 포장길이 대피소까지 이어지고 대피소에서부터 잠깐 고르게 다져진 비포장길이 나오지만 곧이어 다시 시멘트 포장길이 소백산 천문대까지 이어진다. 군부대나 천문대의 차량 통로 목적일 것 같은데 이 아름다운 산에는 분명 어울리지 않는 길임에 틀림이 없다. 올라가는 내내 어디까지 이런 시멘트 포장길일까 생각해 봤는데 이내 알아차렸다.
작년 10월에 소백산 삼가야영장에서 캠핑을 하면서 비로사를 거쳐 비로봉에 도전해보려고 했었는데 시간상 비로사만 보고서 좀 더 수월하게 다녀올 수 있는 함백산에 다녀온 적이 있다. 이 후로 어느덧 9개월 가량 지난 시점이다. 평소에 산을 다니지 않은 아내는 처음부터 넉다운 되는 듯한 표정이다. 죽령 탐방 안내소에는 이미 통로를 막아 두었지만 우리는 대피소 예약을 해서 별 탈없이 올라갈 수 있었다. 직원분께서 대피소까지 약 4km 로 2시간 정도면 간다고 했다. 사전에 산행 루트와 시간 등은 숙지를 했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입장에서 다시 한 번 확인을 한다.
늦은 오후임에도 햇살은 뜨거웠다. 그나마 해가 기울어서 나무 그림자가 길 한쪽에 생겨 다행이었다. 후텁지근한 이 고행길도 1시간 정도 올라 1000미터 고지가 넘어가니 시원한 바람이 불면서 좀 나아졌다. 초반의 워밍업부터 다들 헉헉 대서 준비해간 물과 음료수를 급속히 소진해서 나는 도착 예정 시간을 감안해 물과 초코렛 등의 간식 소진을 조절해야 했다. 아이들은 힘들어했지만 둘째 녀석이 그 작은 다리로 성큼 성큼 형을 앞질러 가며 형의 자존심을 터치하자 형이 이에 질세라 따라가는 형국으로 잘 도 올라갔다. 길 양 옆으로는 아직도 야생화 천지였는데, 꽃들이 많아서인지 벌들이 쌩쌩 지나가면서 굉장히 신경을 거슬렸다.
죽은 뱀을 두 번을 봤는데 둘 다 차에 깔린 듯이 납작하게 눌려서 말라 비틀어져 있었다. 아마도 따뜻한 시멘트 바닥에 있다가 차에 밟힌 것은 아닐지 아니면 어떤 이유로 죽은 뒤 다른 짐승들에게 먹힌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첫번째로 발견한 죽은 뱀은 머리가 없었고 두 번째로 발견한 뱀은 다람쥐가 먹고 있었다. 저 앞에 길 한복판에 다람쥐의 옆모습이 보이는데 손으로 뭔가를 들고서 먹고 있다. 뭔가 길쭉한 것을 들고 있었는데 다가갈 수록 뱀같이 생긴 것이 가까이서 보니 죽은 뱀을 먹고 있었다.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만큼 맛있는 것인가? 바로 앞까지 다가갈때까지 맛있게 먹고 있다가 화들짝 놀라고는 도망을 가버렸다. 다람쥐가 뱀도 먹는다라는 사실을 알았다.


2시간 정도 지나니 드디어 대피소가 보인다. 힘이 난다. 아이들은 쪼로로 뛰어 올라가더니 아빠에게 누가 더 우스꽝스러운 포즈를 취하는가 시합이라도 하 듯 포즈를 취한다. 배꼽 보이기, 돼지코 만들기.




드디어 제2연화봉대피소다. 제2연화봉에 자리잡은 대피소 밑에는 백두대간 제2연화봉이라고 적힌 커다란 표시석이 있다.역여기까지 오는 동안 한 사람도 만나지 못하다 대피소 부근에 와서야 어의곡에서 오셨다는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오후 6시 30분이 넘어가면서 서쪽하늘의 해는 더 기울어 하늘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한다.














대피소 마당에서 저녁을 준비하며 짧지만 고단했던 산행을 추억으로 간직하기로 한다.


소백산 천문대 방향. 내일 진군할 방향이다.




대피소 옥상에서 바라본 모습들. 시원한 풍광들이 일품이고 내일 아침 일출도 기대가 되었다.
좀 더 어둑어둑해지니 대피소 직원께서 야외의 대피소 쪽문에 간소하게 설치된 무대에서 색소폰 연주를 시작으로 등산객들의 노래방이 마련되었다. 하나 둘 무대 앞으로 모여들더니 5~60대 분들의 흥겨운 노래와 춤이 1시간 정도 이어졌다. 곳곳에서 뜨거운 박수소리가 쏟아졌다. 사실 1350미터의 산고지에서 노래방이 운영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고 이런 식의 풍류를 난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탁 트인 산꼭대기에서 노을을 바라보며 고기를 먹고 들려오는 노래가락이 크게 거스른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그냥 다 좋았다.
저녁을 먹고 정리하니 어느덧 깜깜한 밤이 되었고 풍기의 야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아내는 내심 만족스런 눈치다. 대피소가 이런거였어? 이러면서 캠핑 이상으로 좋네 라고 한다. 아내들에게 1박 이상의 산을 처음 접하게 하려면 국내 최고 시설의 대피소를 우선 선택하는 게 좋을 듯 하다.
밤 9시가 대피소 소등시간이다. 우리는 성인 두자리만 예약이 되어 있기에 우리 부부가 아이들을 한명씩 끼고 자려고 했는데 다행히 자리가 남았는지 친절한 대피소 직원 분께서 입구쪽이긴 하지만 2층에 4자리를 마련해 주셨다. 아이들에게 떠들지 말라고 당부를 하고 내일을 위해 눈을 감아본다. 소등시간 이후에도 뒤늦게 들어오는 사람들, 큰 소리로 떠드는 약간 비상식적인 분들도 있었는데 이내 잠잠해졌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눈을 붙여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꼭 한명 이상씩은 있는 코골이 하는 분들. 우리가 있었던 방에는 딱 한 분이 있었는데 천둥소리 보다 큰 코골이로 사람들이 힘들어했다. 역시 대피소에는 귀마개는 필수품인 듯 하다. 그리고 초등학생은 됨직한 어린애가 밤새 중간 중간 “으앙” 하고 큰 소리로 발작하 듯 우는 통에 잠은 설잠을 잘 수 밖에 없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다음날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일출을 보고 다시 산행을 시작한다고 일러두었다. 그리고 난 알람을 새벽 5시에 맞춰두었다. 언제나 그렇 듯 정해 놓은 시간보다 늦어지기 마련이니 30분 정도의 마진을 둔 셈이다. 다음날 5시에 일어나니 아내 역시 약간 설잠을 자고 나서 깨어 있었다. 밖에 나가보니 구름 안개가 자욱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내가 서둘러 짐챙겨서 나가자고 하니, 정말 이시간에 나가는 거였냐는 표정을 짓는다. 아마도 아내는 평상시보다 조금 이른 시간 7시 정도를 염두해 두었던 것 같다. 우리는 햇반을 끓여서 김치도 없이 김에 싸서 아침을 해결했다. 그리고 난 정상까지 가는 것은 무리일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혹시나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너희들, 소백산 꼭대기까지 가고 싶니, 아니면 중간까지만 갔다가 되돌아오고 싶니? 꼭대기까지 가면 어제보다 더 힘들거야.” 의외로 두 놈 다 꼭대기까지 가보고 싶단다.   


오전 6시. 여전히 구름안개가 자욱해서 일출과 기대했던 아침 조망은 포기했지만 산행에는 오히려 적합한 날씨였다. 자, 이제 먹을 물과 간식거리를 사서 출발하면 되는데… 헉! 매점 오픈 시간이 오전 7시다. 우리 부부가 얼마나 설렁설렁한지 다시 한 번 깨닫는 아침이었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어쩔 수 없이 1시간 정도를 더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다행이 15분 정도 지나니 직원 분이 일찍 일어나셔서 문을 열어주셨다. 또 한가지는 현금을 꼴랑 4천원만 준비해서, 그것도 우연히 가지고 있었던 것. 신용카드 결제가 안되어서 모자라는 돈에 대해서는 외상을 해야 하나 머리를 굴리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배낭안에 이전 등산에서 쓰고 남은 돈 몇만원이 있었다. 우리는 500ml 생수 6병과 초코파이 한상자를 사서 출발했다. 오전 6시 20분. 대피소 계단을 나서면서 대피소의 두 직원의 상반된 의견이 기억에 남았다. 한 분은 3시간이면 갈 수 있을 거라고 하셨고, 다른 한 분은 아이쿠 이렇게 작은 어린애가 가기에는 무리니 연화봉 정도까지 갔다가 되돌아 오라는 것이었다. 죽령에서 대피소까지 애들을 데리고 온 느낌으로 보자면 땡볕속에서는 분명히 무리한 일정으로 판단이 되었지만, 짙은 구름속에서는 천천히 가면 되겠다 싶었다.




제2연화봉 표시석을 다시 지나 소백산 천문대까지 이어진 임도를 걷는다. 안개가 자욱해서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같이 푹푹 찌는 시기에 구름 한 점 없는 쨍쨍한 날씨였다면 이른 아침부터 힘든 고행길이 되어 정상 정복은 아이들을 데리고 가기엔 무리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더구나 보호막도 제대로 준비해 오지 않은 우리들에게는 더더욱 말이다. 제2연화봉에서 소백산 천문대로 가는 길은 완만한 내리막으로 가다가 다시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스타일이 각 봉우리마다 이어진다. 완만한 내리막, 그리고 다시 봉우리로의 오르막. 대피소에서 출발한지 1시간 정도 지나니 천문대에 다다랐다.


아침식사 후 화장실이 급해 천문대를 기웃거렸는데 연구원들의 근무 시간 특성상 일반인들에게는 오후 1시 30분 이후로 개방을 한다는 안내문이 있었다. 그런데 몇 걸음 더 지나면 마지막 화장실이 떡 하니 있다.  


형철이가 찍어준 현수 사진. 화장실 앞에 소백산 지도 안내판이 있다. 연화봉으로 갔다가 비로봉으로 가는 길이 있고 곧장 비로봉으로 가는 길이 있다. 나는 안개가 껴서 조망이 그리 좋지 않을 것 같았고 조금이라도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연화봉을 거치지 않고 곧장 비로봉으로 가기로 했다. 좌측길로 가면 된다. 생각해보면 연화봉들의 명칭이 어떻게 지어진 것인지 의아하다. 비로봉쪽에 가까운 곳이 제1연화봉이니 연화봉이라는 이름을 가진 봉우리라면 순서대로 제1연화봉, 제2연화봉, 제3연화봉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게 아니고 제1연화봉, 연화봉, 제2연화봉이다.




볼일을 보고 30분 정도의 휴식 후 다시 진군이다. 오전 8시. 드디어 넓은 포장길은 없어지고 좁은 산길이다. 제1연화봉으로 가는 길 역시 앞서 얘기한 것처럼 완만한 내리막으로 내려간 후 다시 오르는 형세다.
 

제1연화봉을 앞에 두고 아이들에게 포즈를 취해 보라고 했더니 축구를 좋아하는 형철이가 골키퍼의 슈퍼 세이브를 연출한다. 축구를 너무 좋아하는 이 녀석은 또래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나 게임 이상으로 축구를 좋아한다. 네이버 스포츠 해외축구란에서 그날 그날의 축구 하이라이트 동영상을 뒤져서 찾아 보는 녀석이다. 등산하면서 골키퍼 장갑을 끼고 하는 녀석도 이 녀석이 유일무이할 것이다. 이 날 만난 두 분의 눈썰미 좋으신 등산객이 골키퍼 장갑을 낀 큰 애를 보고 너 골키퍼구나 라고 하면서 지나쳤다.










작년 겨울 지리산에 갔을 때 산행 내내 눈 때문에 앉아서 쉬지도 못한 경험을 한 후로 등산할 때 이 작은 사이즈의 얇은 풋프린트를 가지고 다닌다. 무게도 가벼울 뿐더러 4명정도 바닥에 앉아 쉴 수도 있고 누울 수도 있다. 바람에 날려 얼굴을 덮으려 하자 웃음보가 터진 형철이.
 

여기서부터는 계단길이 나온다. 연화봉들과 비로봉을 오르는 구간은 1300미터 이상의 아고산지대로 기온이 차고 바람이 많이 불어서 나무가 자라기 힘들다고 한다. 덕분에 탁트인 전경으로 조망이 아주 좋고 시원하다. 형철이와 현수는 계단길이 나와서 신이 났다. 가위바위보 게임을 하면서 이긴 사람이 네칸씩 오르기로 한다. 작년에 당시 7살, 5살이었던 아이들과 설악산 토왕성 폭포를 갔을 때 900여 계단을 오를 방법으로 아이들에게 가위바위보 게임을 시켜서 오른 적이 있었다. 이 녀석들은 이걸 잊지 않은 것 같다.
 



처음에 현수가 앞서는 듯 하더니 다시 형철이가 역전한다. 지나가는 등산객들이 재미있다며 웃어준다.












제1연화봉 바로 직전의 조망대. 안개구름이 시원한 바람과 함께 재빠르게 지나가면서 조망이 보였다 안보였다 한다. 여기까지 가위바위보 게임은 형철이가 승리. 이 후 형철이는 악착같은 현수에게 내리 3연패를 한다.
 







제1연화봉을 지나 비로봉을 향해 간다. 두 녀석들은 이제 벌레에 관심이 생겼다. 메뚜기, 여치를 잡는다면서 해찰을 한다.












오전 10시 5분.
반대편에서 오던 어떤 산객이 앞서가고 있던 현수에게 한마디 던지고 가신다. “네 아빠 늙을때까지 포기해야 한다”. 웬지 반박할 수 없어 골똘히 생각하는 새 그 분은 벌써 뒤로 사라졌다. 16년 지나면 환갑이니 그 정도 시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을 잠시 해봤다. 그 분의 일행분은 맨발로 가고 있었는데 등산화를 잃어버렸단다. 비로봉쪽에서 오시면서 등산화를 잃어버렸다니 어떤 사연이 있을지 궁금했다.
 

오전 10시 8분. 이제 뒤로 구름에 살짝 가려진 비로봉이 보인다.


여기까지 온 이상 어찌됐든 비로봉까지는 가야겠는데 차가 있는 죽령까지 돌아갈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중간에 간간히 반대 방향으로 가시는 등산객들에게 어디서 출발해서 비로봉을 거쳐서 오시느냐고 물어보곤 했는데 결국 가장 좋은 방법은 비로봉에서 비로사로 내려가서 택시로 죽령재까지 이동하는 것이었다. 택시비가 2만원 정도라고 했는데 나중에 풍기택시에 전화를 걸어서 알고 보니 비로사에서 죽령까지는 3만 5천원이었다.


좁은 숲속길을 지난다.




잠시 휴식을 취하는 사이 이 녀석들은 또 여치 잡이에 몰두한다. 형철이가 말한다. “나는 모든 벌레를 손으로 잡을 수 있는데 징그러운 것은 잡을 수 없어요.” 뭐가 징그러운 벌레일까.
 







이제 연화봉이 코앞이다. 계단이 나와서 신이 났는지 이 녀석들이 뛰어간다. 엄마, 아빠에 한참 앞서서 둘이서 나란히 앉아서 기다리고 있다가 가까이 다다르면 씩 웃으며 뒤돌아 냅따 도망가는 형식으로 비로봉에 다가선다.


오전 11시가 약간 안되어 드디어 비로봉에 도착했다. 제2연화봉대피소에서 약 4시간 30분여분이 소요되었다. 아내는 내심 뿌듯해하면서도 이 정도인 줄 몰랐다며 힘들다고 엄살을 부렸다. 아이들은 꼭대기에 왔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초코파이와 물한모금씩 먹고 비로사쪽으로 하산이다.








늘 동생보다 앞서야 한다고 생각하는 형아. 왜 맨날 형아가 앞이어야 하냐며 악착같이 따라붙는 동생. 이 둘의 경쟁이 종종 트러블을 만들기도 하지만 고난의 길 위에서 서로에게 힘이 되기도 한다.




멋진 추억을 간직한 채로 비로봉을 떠났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아이들에게 소백산 등산 1박 2일이 힘들었지만 재미 있었냐고 물었다. 둘 다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다고 한다. 아직까지는 다행이다. 다음에 덕유산 대피소에 갈래? 했더니 간단다. 하하...
 
이동거리 : 15.4Km
소요시간 : 21시간 15분 15초
이동시간 : 8시간 7분 59초
휴식시간(대피소 숙박 포함) : 13시간 7분 16초
2016년 7월 23일~7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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