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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陰者는 百代之過客이라. 세월이란 것은 영원한 과객이라. 김선호는 영원한 과객의 흔적을 기록한다.

백두대간 001 - 지리산(천왕봉~장터목) (2015-11-28~11-29)

김선호 2015.12.04 13:50 조회 수 : 693 추천:25



2015년 11월 28일 ~ 11월 29일 상범이와 함께 한 지리산 산행 후기

더 나이 들기 전에 할 수 있는 것들을 하자는 아주 단순한 명제에 같은 뜻을 가진 친구 두 녀석을 한묶음으로 해서 백두대간을 계획했다. 승필이는 중, 고, 대학교 동창이고 상범이는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이다. 이 두녀석간의 사이는 중학교 동창으로 서로 안면 정도만 있을 뿐이고 내가 그 중간 접점에 있다. 백두대간이 끊어짐 없는 connecting the dots의 개념으로 본다면 우리 셋의 관계 역시 점이 이어져 하나가 된다고도 볼 수 있겠다. 이 백두대간을 통해서…

백두대간을 한다는 것은 더 나이 들기 전에 하는 것 이상으로 의미가 깊고 또 복잡한데 그 이유 중 하나는 계획을 짜는 것이 너무도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실제로 3명이서 날짜를 맞추는 것부터 쉬운 일이 아니다. 각기 회사일을 비롯해 경조사, 집안 대소사, 예기치 않은 일들을 다 피해 날짜를 정하고 들머리로 정한 중산리에 시간에 맞춰 대중교통으로 오는 방법을 구상을 해야 했다. 수 많은 논의 끝에 11월 7일로 정했고 그 어렵다던 대피소 예약도 겨우 성공했다. 우리의 계획은 중산리~천왕봉~장터목~세석 대피소 1박~노고단이었다. 그런데 날짜가 다가 오자 하필 그 주말에만 비 예보가 있었고 매일 매일 변하던 날씨 예보는 그 날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비 맞으며 갈까도 했지만 3주 뒤로 연기하고 대피소 예약을 취소했다. 그리고 그 주에 실제로 전국적으로 비가 내렸다. 다시 11월 28일로 날을 잡아 장터목 대피소를 잡았는데 알고 보니 11월 16일부터 12월 15일까지 산불방지기간으로 천왕봉, 장터목 코스 빼고 전구간 통제지역이다. 아쉽지만 더 이상 미룰 수는 없어서 날짜를 확정했다. 중산리~천왕봉~장터목~백무동으로 코스를 잡았다.

전화위복이란 말을 이럴 때 써야 하는 것인가. 산행 전전날 지리산에 40cm의 눈이 왔다고 한다. 사실 이런 뉴스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는데 막상 가서 보니 대박이란 말을 이럴 때 쓰는 구나 싶었다. 하지만 스타트부터 우여곡절이 있었다. 모든 걸 준비하고 점검하고 이제 내일이면 출발인데 밤 8시가 넘어 승필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공장이 스톱되서 지금 당장 회사에 가봐야 한다는 것이고 안타깝게도 함께 하지 못한다는 것. 이 녀석과 간간히 1박으로 산행이나 자전거 라이딩 등을 해 왔는데 신기하리만치 그 때마다 공장에 문제가 생겨서 새벽같이 회사로 달려 가곤 했는데 또 이런 불상사가 생겼다. 결국 상범이와 둘이서 강행하기로 하고 이번에 함께 하지 못한 승필이는 나중에 중산리~장터목~세석을 할 때 별도로 천왕봉 코스를 추가해서 하기로 했다.

우리는 서울남부터미널에서 오전 7시 30분 차를 타고 원지로 가서 다시 중산리로 가기로 했다. 그러면 대략 중산리 정류소에 12시가 약간 넘을 것으로 기대를 했다. 그런데 예매를 하지 않은 실수를 했다. 토요일 아침부터 원지라는 곳을 사람들이 가랴 하고 예매를 안하고 정작 28일 토요일 아침 일찍 터미널에 가보니 7시, 7시 30분, 8시 원지행 티켓이 모두 매진되었다. 원지가 종착역인 줄 알았더니 진주가 종착역이고 티켓을 미리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이미 잔여석이 생길까 하고 긴 줄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우리는 결국 8시 다음 차편인 9시 30분 차를 타고 갈 수 밖에 없었고 기대한 것보다 2시간이나 늦게 원지에 도착을 했다.



어이없게도 매진으로 이른 아침 시간의 버스를 타지 못하는 바람에 근처 곰탕집에서 아침을 먹고 커피숍에서 커피 한 잔 하며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원지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50분으로 원지터미널에서 12시 45분발 중산리행 버스도 놓쳤구나 싶었는데 마침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중산리행 버스를 쉼없이 탈 수 있었다. 중산리 정류소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 30분. 다시 걸어서 중산리 탐방안내소까지 가야 했다. 날은 좋았다. 다만 저 멀리 지리산 꼭대기의 기운은 남달라 보였다. 흰 설산과 그를 휘감고 있는 구름들.
중간에 올라가는 차를 얻어 타서 10분 정도의 시간 절약을 했고 탐방안내소에서 오후 1시 50분에 출발을 하게 되었다. 뜻하지 않은 지연으로 우리는 천왕봉으로 가지 않고 장터목으로 곧바로 올랐다. 사실 오늘 날이 좋아 멋진 석양을 천왕봉에서 보는 것을 기대했지만 내일 새벽에 천왕봉으로 가기로 했다.





중산리 계곡길을 따라 올라간다. 조금 걷다 보니 금새 더워지기 시작했다. 지퍼를 열어두고 안쪽의 짚업티를 조금 내린채로 오르니 기온과 체온 발란스가 딱 맞는 것 같았다.









탐방소에서 약 2시간 정도 지났을까… 탁 트인 곳에서 꼭대기 능선을 볼 수 있는데 조금 과장되게 얘기하자면 히말라야나 알프스산들의 꼭대기만 설산인 것 같은 그런 느낌의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지니 정말 멋있다.



이 때만 해도 위쪽의 눈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하지 못했다. 그러나 산행시작 후 3시간정도 지났을까 대략 1300미터 지점부터는 눈의 양과 깊이가 확연히 달랐다.





밋밋할 수 있는 숲속이 눈으로 가득차 상쾌한 기분과 더불어 기분을 복돋운다.



스틱을 눈에 꽂아보면 적어도 30cm 이상은 쌓인게 분명한데 그래도 탐방로는 이미 많은 등산객들로 다져져 스패츠까지는 필요 없었고 아이젠 착용한 발로 매끈한 길을 뽀득뽀득 밟아 나가는 게 재밌었다. 나중에 돌이켜 보니 눈 길을 걷다 보니 어디 마땅히 앉아 쉴데도 없고 서서 간혹 물을 마시며 숨을 돌리고 계속 진군했던 게 다리에 무리를 준 듯 했다. 등산하면서 한 번도 그런적이 없었는데 하산 후에 오른쪽 무릎에 통증이 왔다.











장터목 대피소 목전의 상고대들. 해는 벌써 산등성이 너머로 내려가 버렸다.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한 게 오후 5시 30분 경. 올라올 때 느끼기로는 주말인데다 눈이 한 가득 왔는데도 의외로 사람들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대피소에 와 보니 취사장에는 이미 수 많은 산객들이 자리를 잡고 음식 준비에 분주하다.



장터목 대피소에서 천왕봉 방향을 등지고 찍은 기념 사진. 저 계단을 따라 1.7km를 가면 지리산 최고봉 천왕봉이다.







장터목 대피소에서 바라 본 해가 넘어간 남서쪽 능선. 어둑 어둑해지며 달라지는 산속에서의 순간 순간들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두툼한 생삼겹살에 김장 김치 하나로 독주가 술술 넘어간다. 좀 아쉬운 점은 야외 테이블은 눈이 쌓여, 물론 겨울밤의 매서운 추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한정된 취사장안에서 모두들 서서 고기를 굽고 볶고 하는 통에 실내는 연기로 그득하고 여전히 앉지도 못한 채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의외로 사람들은 분실물에 대한 우려인지 대부분 배낭을 가지고 와서 비좁은 취사대를 더 좁게 만들었다. 이 날 목격한 가장 놀라웠던 음식물은 옆에 어떤 그룹이 한 냄비 가득하게 준비해 온 닭발 볶음이다. 대단한 준비다. 덕분에 닭발 하나 맛 볼 수 있었다.

식사 후 대피소에 들어가는데 뒤늦게 올라온 산행객 1명과 대피소 직원과의 언쟁이 이목을 끌었다. 대피소 직원의 강한 어조의 말에 산행객은 아무 대꾸도 못한 채 얼굴만 바라보는 것 같았다. “왜 선생님의 잘못을 저희에게 떠 넘기시는 겁니까? 예약하지 않으면 절대로 잘 수 없다고 홈페이지나 안내소에 다 설명이 되어 있는데 몰랐다고 하는 건 선생님의 잘못을 저희에게 떠넘기는 것 밖에 안됩니다. 왜 밑에서 막지 않았냐고요? 과속을 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경찰이 과속한 걸 막지 못한 게 경찰 책임이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고 봅니다. 벌금 30만원… “ 그 뒤 얘기는 자세히 듣지 못했다. 아마도 예약도 하지 않고 뒤늦게 올라와 버린 그 아저씨는 과태료 30만원을 물고 잤을 것 같다.



동계에는 오후 8시에 소등을 한다. 술 한 잔 걸치고 잠을 잔다해도 평상시 잠을 자는 시간을 고려하면 새벽에 몇 번이 깼는지 모르겠다.



다음 날 깜깜한 새벽 5시 50분에 랜턴을 챙겨 천왕봉으로 향했다. 일출 시각이 7시 15분으로 되어 있어 배낭을 대피소에 놓고 좀 가벼운 차림으로 느긋하게 갔다. 되도록 일출 시간에 맞추어서 속도를 조절했는데 왜냐하면 언제나 그렇듯 정상에서의 칼바람은 상상외로 거세기 때문에 기다리는 시간을 최소화하려고 했다. 6시 50분 경이 되니까 날이 서서히 밝아 온다. 하지만 기대했던 일출은 보지 못할 것 같았고 실제로 못봤다. 안개와 구름이 뒤섞여 바닥은 하얀 눈이요, 하늘은 하얀 안개구름에 온통 흰색 뿐이었다.







7시가 채 안되어 천왕봉에 도착했는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정상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확실히 능선과 정상의 칼바람은 거셌다. 하지만 다행히도 대피소에 장갑을 놓고 와서 손이 시려웠을 뿐 기능성 복장의 덕인지 몰라도 간편한 복장치고 몸은 하나도 춥지 않았다.



천왕봉 정상석에서. 일출의 아쉬움 때문에 이 순간에는 정작 백두대간의 출발점에 왔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여기서부터 시작했다 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순간이다.



다시 한 번 기념 사진을 찍고 다시 장터목으로 향한다. 이 후 장터목 대피소까지 1.7km의 지리산 설경은 평생에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말로 형언하기 힘들 정도로 아름답고 멋진 영상의 연속이었다.



뭔가 험난한 여정을 떠나고 있는 원정대 같은 느낌이 든다. 재미났던 게 어떤 남자가 얇은 추리닝 바람으로 천왕봉에 왔는데, 정말 속에는 티셔츠를 입었는지 뭘 입었는지 모르겠지만 얇은 추리닝 한장이었다. 어찌나 추워보이던지 주머니에 두손을 넣고 몸을 움츠리며 오들 오들 떨며 총총 걸음으로 서둘러 내려갔다. 신발은 운동화였는지 등산화였는지 모르겠지만 아이젠도 없었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어떤 아주머니가 자신의 일행에게 내 뱉은 한 마디가 기억에 남는다. “사고를 한 번 당해 봐야 정신차리지! 남들에게도 피해주는 거야, 저거는”. 아침 7시에 밑에서부터 저 차림으로 오지는 않았을테고 아무래도 대피소에 짐을 놓고 왔을 것 같은데 아무리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슨 생각으로 추리닝 차림으로 이 겨울에 여길 왔는지..









참 멋드러지게 피어난 상고대 앞에서 사진을 찍어 봤는데 이 후로 내려 오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지나치지 않고 줄을 서서 한사람씩 이 앞에서 사진을 찍고 갔다.



무슨 하얀색 브로콜리 같기도 하고…





















제석봉에 도착했다. 이곳에서의 경치는 그야말로 끝내준다. 말이 필요 없다.







제석봉에서…































대피소로 돌아와서 짐을 챙기고 라면에 밥 한그릇 말아서 아침을 먹고 9시 25분에 백무동으로 향했다. 내려가기 전 주 능선을 한 번 바라본다. 눈 꽃 핀 바람개비가 신나게 돌아간다.



백무동 하산 길은 이렇게 능선을 볼 수 있는 곳까지만 그런대로 괜찮았고 이 후로는 지리하고 긴 하행길이 계속되었다.



뒤를 돌아 다시 한 번 장터목 대피소(가운데 움푹 들어간 곳)를 바라보고 하산한다.















앉을 곳이 없어 내내 서 있기만 했는데 누군가 이미 눈 청소까지 해 놓은 쓰러진 나무 의자에 잠시 앉을 수 있었다.





한 참을 내려오다 보니 해가 들고 1300미터 정도부터는 눈이 빠른 속도로 녹고 있었다. 나무위에 눈덩이들은 힘없어 떨어지기 시작하고 온도는 급상승한 것 처럼 훈훈해진 것 같았다.
백무동 정류소에 오니 12시 28분. 눈 덕분(?)에 쉬지 않고 걸어서인지 3시간만에 5.8km 백무동 하산을 완료했고 대신에 오른쪽 무릎 통증을 가져왔다. 우리는 동서울행 오후 1시 30분 티켓을 끊고 마침 매표소가 식당이기에 간단히 술한잔 걸치고 돌아 왔다. 오는 길에 같이 합류하지 못했던 승필이로부터 비오는데 괜찮냐는 문자를 받았다. 이 쪽은 해가 떴는데 중부지방에는 비가 내린 모양이다. 오랫동안 같이 계획했던 승필이와 다 함께 하지 못해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뜻하지 않았던 눈꽃 산행을 할 수 있었고 뭔가 보상받은 듯한 느낌, 무엇보다 어찌됐든 지리산을 산행으로는 처음으로 다녀왔고 백두대간을 시작했다는 그 하나만으로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던 산행이었다.

다음을 기약하며…

총 이동 거리 : 17.91km
이동 경로 및 시간 : 중산리 탐방안내소(11월 28일 13:50) ~ 장터목 대피소(17:30 도착, 11월 29일 05:50 출발) ~ 천왕봉(07:00 도착, 07:10 출발) ~장터목 대피소(08:13 도착, 09:25 출발) ~ 백무동 정류소(12:28 도착)

2015년 11월 28일 ~ 1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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